고향 만경대를 떠나 조국개선 20년

 

 

고향 만경대를 떠나 조국개선 20년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1(1912)년 4월 15일 오늘의 평양시 만경대(당시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에서 탄생하시였다.
 만경대는 예로부터 명승지로 이름 높은 고장이다.
 만경대두리에 있는 높고 낮은 봉우리가운데서 제일 높은 봉우리를 만경봉이라고 부른다.
조선의 옛 조상들은 이 봉우리에 올라서면 일만가지 경치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다고 하여 그 이름을 만경봉이라고 지었고 그 기슭에 아늑히 들어앉은 마을을 만경대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강점으로하여 만경대는 피눈물 흐르는 조선의 한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짓밟힌 인민의 신음소리를 들으시며 그이께서 탄생하시였던것이다.
지금도 만경대에 가면 그이께서 탄생하신 수수한 초가집이 그대로 보존되여있다.
대대로 혁명적이며 애국적인 가정에서 탄생하신 그이께서는 10대 소년기에 조선을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큰 뜻을 품으시고 만경대를 떠나 조선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투쟁의 길에 나서시였다.
그때로부터 20년세월 그이께서는 간고한 시련의 고비, 혈전의 언덕을 넘고 헤치시며 끝끝내 일제를 몰아내고 조선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였다.
조국에 개선하신 력사의 그날을 오늘도 조선인민은 못잊어 그려보고있다.
주체34(1945)년 10월 14일  오후 1시,  온  겨레가  그처럼  열렬히  흠모하는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환히 웃으시며 주석단에 나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군중에게 답례를 보내시였다.
그이를 우러르는 군중의 눈가에는 격정의 눈물이 소리없이 흐르고있었다.
그칠줄 모르는 환호성으로 하여 그이께서는 한동안 연설을 시작할수 없으시였다.
후날 이때를 돌이켜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어느때였는가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 순간이였다고 대답할것이라고 하시면서 민중의 아들로서 민중을 위해 싸웠다는 행복감, 민중이 나를 사랑하고 신임한다는것을 느끼는데서 오는 행복감, 그 민중의 품에 안긴 행복감이였을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력사적인 개선연설을 하시였다.
 당시 《평양민보》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평양의 력사가 깊어 4천년, 인구가 적지 않아 4천만이라 하나니 일찌기 이와 같이도 많은 사람이 모인 일이 있었던가? 이와 같이도 뜻깊은 모임을 가져본 일이 있었던가?…
…조선동포가 가장 숭모하고 고대하던 영웅 김일성장군께서 그 름름한 용자를 한번 나타내이니 장내는 열광적환호로 숨막힐듯 되고 거의 전부가 너무 큰 감동때문에 소리없는 울음을 울었다. …군중에게 준 감동은 강철과 같은것이여서 산야가 떠나갈듯 한 환호성가운데 <이 사람과 같이 싸우고 같이 죽으리라>는 사람들의 결의는 눈에 보일듯이 고조되였다.》
조선인민은 력사의 그곳에 개선문을 훌륭하게 일떠세우고 그이의 조국해방업적을 세세년년 전해가고있다.

 

 
고향 만경대를 떠나 조국개선 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