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력사, 찬란한 문화
애국명장-서희
202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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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명장-서희

 
서희(942-998)는 고려의 외교활동가, 애국명장이였다.
18살때인 960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친 그는 반거란전쟁시기에도 자기의 뛰여난 외교술과 지략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당시 북중국을 비롯한 광대한 령토를 점령한 거란은 993년에는수십만의 대군을 동원하여 고려에 침입하였다.
적들의 침공에 의하여 고려군이 구성서남쪽 30리지점에 있는 봉산전투에서 일시 패하게 되자 고려정부안에서는 적들에게 항복하자느니, 서경 (평양)이북지역을 침략자들에게 내여주자느니 하는 투항주의적인 주장들이 나왔다.
하지만 서희는 불굴의 항전을 강력히 주장하여 고려봉건정부로 하여금 반침략투쟁을 견지할수 있게 하였다.
청천강남안의 안융진(안주서남 60리)전투에서 고려군대와 인민들의 완강한 항전에 부딪쳐 큰 타격을 받은 거란침략자들은 교활하게도 일시 공격기도를 접고 수십만의 대군이라는 력량상우세에 기초하여 고려에 투항을 요구해나섰다.
적들의 허장성세를 간파한 서희는 이쯤되면 적들을 담판장에 끌어내여 외교적공세로써 쳐물리칠수 있다고 생각하고 주동적으로 담판을 제의하였으며 누구도 선뜻 나설 용단을 내리지 못하는 적진속으로 자진하여 들어갔다. 그리하여 서희와 적 우두머리사이에 담판이 벌어지게 되였다.
서희의 외교적수완은 담판과정에서 더욱 남김없이 발휘되였다.
담판에서 적 우두머리는 서희장수에게 고구려때의 옛땅을 자기 나라가 차지하였으니 응당 고려가 그 땅을 떼여 바치라는 등으로 강도적인 요구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서희는 적 우두머리에게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서 나라이름까지 고려라고 하였다. 지경을 가지고 론한다면 너희들이 차지하고있는 료양까지도 우리의것이다》라고 하면서 고구려의 옛땅을 《돌려달라》는 적장의 황당한 제의를 일축해버렸다.
그의 주동적이며 능란한 외교활동에 의하여 적들은 담판에서 완전히 피동에 빠지게 되였다. 적들은 고려군민의 강력한 항전에 맞설수 없었고 담판에서 궁지에 빠지자 마침내 물러가지 않을수 없었다.
이처럼 서희는 당당한 외교술로 제1차 반거란전쟁에서의 승리를 가져오는데서 결정적역할을 한것으로 하여 조선민족사에 그 이름이 길이 전해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