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의 증언

 
조선해방의 위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업적에 대한 력사적 증언자료중 일부를 소개한다.
 
김일성빨찌산》
《조선은 압제자들에 대한 투쟁을 독자적으로 계속하였다. 1945년 8월까지 조선에서는 빨찌산부대가 활약하였다.》
쏘련원수 에르. 말리놉스
 
《조선독립대장 김일성
《나는 지금도 일본의 패전을 한해 앞둔 어느날 관부련락선의 침실천정에 <조선독립대장 김일성>이라는 글자가 씌여져있어 일본관헌들을 아연케 했던 사실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김일성장군은 말그대로 조선독립대장이시였다.
10대의 학창시절부터 지하투쟁을 벌려오신 김일성장군은 일본이 만주에 대한 침략준비를 본격적으로 다그치던 시기에 벌써 일본의 대아시아정책에 위협을 주는 인물로 주목되였다. 그러한 리유가운데는 김일성장군이 첫째로 비상한 조직적수완을 가진 학생운동의 지도자이시라는것, 둘째로 년령에 비하여 너무도 일찌기 광범한 계층의 지지를 획득하고있다는것, 셋째로 수많은 청년들을 휘하에 결집하였으며 무장으로 일본에 대항하여 조선독립을 이룩한다는 로선을 굳히고있다는것 등이 있었다.
김일성장군의 조직력과 반일무장투쟁에 대한 구상은 완전히 성공하여 1930년대초에 항일유격대를 창건하는데 이르렀다.》   
《만주국》국경경찰대 경찰관 가가미 미유끼
 
보천보전투
《1937년 6월 4일에 김일성장군이 항일유격대를 인솔하고 조직진행한 보천보전투에 대해서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나는 당시 혜산(조선북부국경일대의 도시)경찰서 순사부장을 하면서 보천보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보천보전투는 매우 짧은 시간에 진행되였다.
그때 보천보에 사는 조선인민은 남녀로소할것없이 모두가 거리에 떨쳐나와 조선독립에 대한 김일성장군의 연설을 들었고 만세를 불렀다. 사실 그때 조선총독부나 일본군에서는 김일성장군의 항일유격대가 그처럼 어마어마한 국경경비진을 뚫고들어와 대담무쌍하게 보천보를 습격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였다. 보천보전투는 일본제국주의에는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주었고 조선인민에게는 해방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었다.》                                                             
혜산경찰서 순사부장 야부끼 사나에
  
전멸된 《토벌대》
《나는 그처럼 믿었던 마에다부대가 전멸되였다는 놀라운 소식에 눈앞이 아찔했다. 다음날 나는 급히 현장에 달려가서 시체들을 거두는 작업들을 지휘하면서 재삼 놀랐다.
김일성장군이 마에다부대를 골짜기에 묘하게 유인해낸 다음 세개 방향에서 집중사격을 가하도록 한 흔적을 보고 그분의 신묘한 전법에 경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 작전은 실로 완전무결한 작전이였다. <대단한 사나이>, <맹호>로 불리우던 마에다가 아무런 반격도 못하고 완전히 전멸된 현지를 돌아보는 우리 모두는 공포에 떨었다.》
《만주국》경찰대 대대장 우나미 히꼬지로
                   
   《김일성장군 만세!》
《평양의 력사가 길어 4천년, 인구가 적지 않아 40만이라 하나니 일찌기 이와 같이도 많은 사람들이 모인일이 있었던가. 이와 같이도 뜻깊은 모임을 가져본일이 있었던가. 특히 대회를 력사적으로 뜻깊게 하고 회중을 감동케 한것은 조선의 위대한 애국자, 평양이 낳은 영웅 김일성장군이 여기에 참석하여 민중에게 반갑고도 열렬한 인사와 격려를 보낸것이다. 조선동포가 가장 숭모하고 고대하던 영웅 김일성장군께서 그 름름한 용자를 한번 나타내이니 장내는 열광적인 환호로 숨막힐듯 되고 거의 전부가 너무 큰 감동때문에 소리없는 울음을 울었다.》
 신문 《평양민보》

 

력사의 증언